경향신문
이유진 기자 입력 2018.[경향신문] ㆍ1인당 환자 2.5명 기준이지만 현실은 혼자서 10명 돌봐야
ㆍ어쩔 수 없는 상황서 ‘결박’…돌아오는 건 법원 집행유예
ㆍ열악한 환경에 구직자 없어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치매 노인을 돌보고 있다. 정지윤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치매 노인을 돌보고 있다. 정지윤 기자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1일로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돌봄의 탈가족화’라는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제도의 손발이 되는 요양보호사들은 여전히 저임금·고강도 노동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돌봄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에게 돌아가고 있어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년차 요양보호사인 ㄱ씨는 지난 4월 노인학대와 공동감금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민간요양원에 입소한 90대 노인을 장시간 잡아두고 강제로 잡아끌어 의자에 앉히는 등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고령의 치매 환자인 피해자를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행동을 제한하고, 상당히 오랜 시간을 결박·격리시켜 놓아 신체의 자유를 억압해 그 죄가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건 이면에 요양보호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있음을 인정했다. ㄱ씨 등 요양보호사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는 피해자를 돌보면서 요양원의 다른 노인들을 함께 돌보기에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결박된 입소자를 여러 차례 찾아가 돌본 점 등을 보면 (요양보호사들이 환자를 학대할 의도는 크지 않고) 요양원의 시설 확충과 요양보호사 인력 증원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열악한 근무환경에 있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그 책임을 모두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ㄱ씨의 동료들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도 이러한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해당 요양원에서는 원장의 지시 아래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아 돌발행동을 하는 입소자의 심신 안정을 위해 ‘억제대’를 사용해왔다. 이들은 “노인학대방지법에는 신체구속을 2시간만 하게 돼 있지만 현실은 장기간 신체구속을 하지 않으면 다른 입소자들을 돌보는 게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ㄱ씨 등 요양보호사들은 1인당 8~10명의 입소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많고, 야간에는 교대 근무로 인해 1명의 요양보호사가 최대 20명의 입소자를 돌봐온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은 “ㄱ씨는 2016년 직원 우수상을 받는 등 어르신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며 “ㄱ씨가 노인학대 혐의로 처벌받는다면 전국의 요양보호사들은 근로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해당 요양원 원장은 ㄱ씨에 대한 임금체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장기요양기관에서는 환자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이 상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곳은 많지 않다. 민간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환자 유치를 위한 가격경쟁이 치열해졌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노인노양원의 환자 방 앞에 요양보호사들이 야간 휴게시간을 보내는 간이침대가 놓여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이 침대에서 쉬면서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대처하게 된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고양파주노동조합 제공이미지 크게 보기
한 노인노양원의 환자 방 앞에 요양보호사들이 야간 휴게시간을 보내는 간이침대가 놓여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이 침대에서 쉬면서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대처하게 된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고양파주노동조합 제공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고용된 요양보호사가 총 10명이 안되는 요양원은 전체 요양원의 30%가량에 이른다. 2015년 전국 장기요양기관 1028곳 중 75.3%인 774곳에서는 총 235억원의 요양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하기도 했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공적 사회보장제도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민소현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회장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150만명이 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35만명에 불과하다”면서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민간요양원 근무를 꺼리고,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인력난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별 감시센터 설립·인력 관리 시스템 구축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결국 그 폐해는 노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