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한명당 노인 다섯..누가 연차 쓰면 스무명까지" [노인돌봄 누구의 몫인가]
이혜인 기자 입력 2019.12.05. 06:00 수정 2019.12.05. 06:33댓글 56
번역 설정
글씨크기 조절하기
[경향신문] ㆍ(2)돌봄노동, 열악한 환경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이미지 크게 보기
경기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요양보호사 300명 설문 결과
하루 10시간 노동…주3일 야근
“별도 계약기간 없어” 68.4%
시설 보호사 “힘쓰는 일 부담”
정서적 돌봄 제공할 여력 없어
가정 방문 보호사, 성희롱 고충
밭일·가사노동 등 강요받기도
낮은 급여, 자부심으로 버텨내
지자체 운영 국공립 1.1% 불과
“국가가 민간 운영 더 개입해야”
“누군가 연차라도 쓰게 되면 한 명이 노인 20명을 돌봐야 하는 시설이 많아요. 그러니까 드러눕게 되기 전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요양시설인 거죠.”(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
정부는 인구 고령화율이 10%에 도달한 2008년부터 향후 증가할 노인부양부담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요양시설과 돌봄인력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현재 전국에는 총 2만2577개의 요양시설이 있으며 약 44만명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여에 걸친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홀로 돌봄을 떠안고 있는 가정이 많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센터장 은기수)의 전지원·문현아 박사 등 연구진과 한국갤럽이 노인 돌봄가족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한 달 기준으로 정부 제공 서비스나 사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까’란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한 사람이 66.8%로 나타났다.
AD
서울특별시
당신의 생각을 표현해 주세요!
당신의 생각을 표현해 주세요!
바로가기
왜 그럴까. 돌봄노동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이 보인다. 질 높은 돌봄이 불가능한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연구진과 한국갤럽은 요양보호시설에서 일하거나 방문서비스(재가)로 일하는 돌봄노동자 약 300명을 별도로 설문조사했다.
평균 나이 54.5세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여성들이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설문에는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전체 설문 대상자의 57.7%가 유급휴일을 갖지 못했고, 68.4%는 “별도 계약기간이 없거나, 계약과 상관없이 고용주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한다”고 답했다. 설문 대상자들은 돌봄일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중복응답)로, 급여가 충분치 않고(78%) 돌봄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어서(48.8%)라고 답했다.
돌봄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 버티듯 일하고 있다는 것은 돌봄 대상자들에게도 양질의 돌봄이 제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시설 보호사, 와상 노인 여러 명 동시에
50대 후반 요양보호사 김미숙씨(가명)가 일하는 요양시설에서는 3명이 한 팀이 돼 노인 18명을 돌본다. 시설에는 기본적으로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노인들이 많이 온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나 걷기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장기요양 1~2등급이다.
김씨는 아침 출근 후 이들에게 수분공급을 위해 수분젤을 먹이고, 눈곱을 떼주고, 세수와 가글링을 해주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돕는다. 수많은 업무 중에서도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는 와상 노인들을 일으키고 뒤집으면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가령 목욕을 한번 시키려면 누워 있는 노인을 들어 휠체어에 태웠다가, 욕실의 목욕 트레이에 올렸다가, 다시 휠체어로 옮긴 후 침대에 눕히는 등 내렸다 옮겼다를 반복한다. 꼼짝 못하는 노인의 온 체중이 요양보호사에게 쏠린다.
시설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의 73.3%는 ‘돌봄일에 신체적 부담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힘든 일은 수행빈도도 높다. 설문조사 결과 옷·속옷 갈아입히기, 용변처리 돕기, 잠자리나 의자에서 자리 바꿔주기 등 힘을 써서 노인을 부축해야 하는 업무는 하루 한 번 이상 하는 비율이 각각 86.7%, 93.3%, 92.7% 등으로 높았다.
이처럼 한 명 돌보기도 힘든 와상 노인을 시설 돌봄노동자들의 60.7%는 1인당 5명 이상 돌보고 있다. 현행법상 요양시설은 입소자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두도록 하고 있지만, 상시 돌봄인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서 누군가 연차라도 쓰면 요양보호사 1명이 20명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상황도 쉽게 발생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정서적 돌봄은커녕 노인의 기저귀를 제때 갈고 끼니를 제때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 정도다.
쉬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 근무 요양보호사들은 하루 평균 약 10시간씩 일했고, 이들 중 절반 정도(45.3%)는 일주일에 평균 3일가량 야간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주간 이틀, 야간 이틀 근무를 하고 이틀을 연달아 쉬는 ‘주주야야휴휴’ 근무 형태와 24시간 꼬박 근무 후에 이틀을 쉬는 ‘퐁당당’ 근무가 일반적이다. 올해 7월부터 4시간 일하면 30분,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반드시 쉬도록 하는 근무 중 휴식시간 의무화 제도가 시행됐지만, 시설노동자의 46.0%가 ‘근무 중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 재가 보호사, 묘목 심기까지 ‘돌봄’(?)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체계 구축, 노인 돌봄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권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노인 돌봄체계 구축, 노인 돌봄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권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전체 요양보호사 중 시설에서 일하는 경우는 18%에 불과하다. 84%는 재가요양보호사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 수급 가정에 방문해 매일 3~4시간씩 목욕이나 가사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에 방문해 요양보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는 부담은 없다. 설문에 응한 재가요양보호사의 59%가 일주일에 1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고 답했다. 얼핏 시설요양보호사에 비해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재가요양보호사들이 허드렛일과 잦은 성희롱 등 고충을 호소한다.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돌봄노인이 아닌 다른 가족의 집안일이나 밭일까지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올해 6월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등이 주최한 ‘재가요양서비스 노동실태 증언대회 및 처우개선 토론회’에서 5년 동안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해왔다는 이선례씨는 “몸 한쪽이 마비된 70대 노인을 9개월 동안 돌봤는데, 집에 방문할 때마다 ‘안아보고 싶다’ ‘손잡아보고 싶다’며 수시로 성희롱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창고정리, 김장은 물론 한겨울에 묘목 심기까지 시킨 집도 있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재가방문요양의 경우 ‘내 돈 주고 일하는 사람을 썼다’는 인식이 강해 매일매일 대청소, 애완동물 돌보기, 손주들 돌보기까지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설문에서도 재가요양보호사의 41%만 ‘돌봄일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고 답했다. ‘돌봄노인의 가족을 상대하는 일이 어렵다’는 답변도 3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