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칼럼] 청년 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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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0-07-09 19:09:25
| 본지 18면
“전 국민 기본소득은 순진한 얘기다. 솔직히 재원부터 답이 없지 않나. 그보다 취업이 안 됐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사회안전망에 들어있지 못한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기본소득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7월 6일 자 뉴스1). 나는 이것이 현실에 기반을 둔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국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자는 전 국민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부터 답이 없다는 판단이 그렇다. 둘째, 취업하지 못한 청년과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취업 청년에게 정부의 지원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그렇다.
그런데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는’이라는 표현에는 ‘선한 의도’와 달리 심각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청년 기본소득’이란 말이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인데, 한마디로 ‘가짜 기본소득’이다. 여기서 ‘선한 의도’라는 표현은 정부가 제도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정책 제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선하고 옳고 필요한 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나 제도는 기본소득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용어는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최근 고유명사인 ‘기본소득’ 담론이 일반명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국민은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생계가 어려운 보통 사람의 기본적인 소득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으로 기본소득을 이해한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일반명사로 사용된다. 심지어 코로나19 대응책으로 국가가 지원한 재난지원금도 기본소득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즉 재난에 처한 국민의 기본적 삶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지출하는 현금을 ‘일반명사로서의 기본소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용어 사용 혼란은 바로 잡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일반명사가 아니다. 특정한 실질에 상응하는 고유명사이고, 실질적 자유를 구현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고유 담론이다. 기본소득의 실질은 다섯 가지 요건으로 구성된다. 첫째, 보편성이다. 자산조사 없이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둘째, 무조건성이다. 근로 등의 조건이나 심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 셋째, 개별성이다.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한다. 넷째, 정기성이다. 매달 지속적으로 지급한다. 다섯째, 충분성이다. 기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하게 지급한다. 이런 요건을 모두 갖춰야 기본소득인데,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질 경우 기본소득이 아니다. 성 이사장은 “취업이 안 됐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사회안전망에 들어있지 못한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표현을 했다. 언론은 이 말을 근거로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 청년 기본소득”이라고 기사 제목을 뽑았다. 여기서 ‘전 국민 기본소득’과 ‘청년 기본소득’은 모두 잘못된 명칭이다. 기본소득의 보편성 요건에 의하면, 국민 모두를 포괄해야 기본소득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 앞의 ‘전 국민’이라는 말은 불필요하고, 수혜 대상을 제한하는 어떤 수식어도 기본소득 앞에 붙일 수 없다.
수혜 대상으로 청년만 따로 떼어낼 경우, 기본소득의 보편성 요건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청년 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이다. 또 ‘취업이 안 된 청년이나 사회안전망에 들지 못한 취업 청년’을 찾아내 이들에게만 현금을 지원할 경우, 기본소득의 무조건성 요건에 어긋난다. 무조건성은 근로 여부 등의 조건이나 근로 의사 등의 심사 없이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결국, 성 이사장의 청년 지원 정책은 기본소득 요건을 두 가지나 위반했다. 게다가 재원의 한계 탓에 지속성과 충분성의 요건도 지켜지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최근 청년 기본소득이라는 ‘가짜 기본소득’이 확산된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 때문인데, 이재명 경기지사의 책임이 크다. 이 지사의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고유명사인 기본소득을 마치 선량한 정책 의지를 가진 일반명사처럼 쓰고 유포했다.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 조례’(2018년 11월)에 근거해 경기도의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지역화폐로 분기마다 25만 원씩,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한다. 월 8만3000원짜리인데, 이는 완전기본소득의 월 80만 원이나 부분기본소득의 월 32만 원에 비해 충분한 금액도 아니다.
생산연령인구를 연령별로 구획·차별하는 청년 기본소득은 경기도 발 정치적 ‘가짜 기본소득’인데, 최근 이게 여의도에 상륙했다. 정치권은 청년의 지지를 의식해 ‘청년 기본소득’이란 용어를 무책임·무분별하게 일반명사처럼 쓰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청년 기본소득’을 고리로 미래통합당과 정책연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19∼34세 청년(가구소득 하위 70%)에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선별적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명백한 ‘가짜 기본소득’이다.
보편적 청년 고용·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복지국가의 선진 사례에 의하면, 대학 입학 청년에겐 무상 등록금에 더해 학생수당과 무이자에 가까운 학생대출이 주어진다. 스웨덴은 무상 대학등록금, 월 50만 원의 학생수당과 월 90만 원의 학생대출(졸업 후 25년 내 상환)을 제공한다. 졸업 뒤 취업을 원할 경우, 누구나 ‘전 국민 고용안정망’의 지원을 받는다. 청년은 취업할 때까지 직업훈련·취업알선과 함께 수당을 받고, 취업 후 실직하면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청년 고용·복지 정책이 부실하다. 재정의 제약 때문이다. 장차 증세로 마련될 돈은 가짜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청년 고용·복지 정책에 쓰는 게 옳다.
그럼에도 청년이나 농민 기본소득 같은 온갖 ‘가짜’가 회자된다. 정치적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가짜를 들고 국민을 속이기 때문이다. 허점 많은 기본소득은 정공법으론 보편적 복지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본질을 숨긴 채 현금 포퓰리즘을 앞세워 보편적 복지를 잠식하려 한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와 포용적 복지국가를 향해 더 매진해야 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