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애초 무리한 공약, 합리적 선택한 것"… 인수위, 4대 중증 '전액지원'서 후퇴
당초 공약대로면 4년에 22조… 他질환과 형평성 문제도 나와 '본인부담금 면제'도 포기
대통령직인수위가 4대 중증 질환(암·뇌·심혈관·희귀난치성 질환) 진료비 전액을 무료로 하겠다는 공약을 대폭 수정하기로 한 것은 막대한 재원 부담,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공약대로 추진할 경우 막대한 돈이 들어 공약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4대 중증 질환 총진료비(비급여 진료비 모두 포함) 건강보험 혜택을 단계적으로 100%로 확대하면 내년부터 4년간 22조원가량이 더 들 것으로 추산됐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런 막대한 재원이 드는 4대 중증 질환 무료화는 비현실적인 공약이라고 지적해왔다.
여권 관계자는 "당초 공약대로 단계적으로 보험 혜택을 확대하되, 재정 부담이 큰 선택 진료비와 병실료는 지금처럼 보험 혜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며 "병·의원에서 진료받을 때 내는 본인 부담금까지 면제해주면 병·의원 이용률이 늘어나는 등 문제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보여 이것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중증 환자가 전액을 내야 하는 비급여액(건강보험에서 혜택을 주지 않는 진료비)이 너무 많아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심각하다"며 "이런 비급여 전액을 건강보험에서 대주겠다"고 했었다. 비급여액은 2010년 기준으로 암은 전체 진료비의 29.6%, 희귀난치성 질환은 25.4%, 뇌혈관 질환은 33.9%, 심장 질환은 30.8% 정도다(건강보험정책연구원).
다른 질환 환자들과 형평성 문제도 지적됐다. 총진료비(비급여 포함)가 500만원 이상인 고액 진료비 환자 중 4대 중증 질환 환자 비중은 55%에 그치기 때문이다. 나머지 45%의 고액 진료비 환자들이 "왜 우리에겐 혜택을 주지 않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진료비를 100% 지원해주는 무상 진료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2006년 6세 미만 어린이 환자가 입원할 때 본인 부담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제도를 시행하자 진료비가 39%나 급증했다. 입원이 공짜라니 너도나도 앞다투어 입원한 결과였다. 이처럼 병실료나 본인 부담금을 전액 지원하면 간단한 진료를 받아도 충분한 사람들이 툭하면 병원을 찾아 입원하고, 1인실, 2인실 등으로 몰릴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수위가 4대 중증 질환의 무료 공약에서 대폭 선회한 것은 후퇴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는 "애초 4대 중증 질환을 무료로 하겠다는 것은 의료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공약이었다"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선회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신영석 보사연 부원장도 "전문가들이 문제로 지적한 부분은 대부분 걷어낸,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인수위가 변경한 방향대로 갈 경우 한 해 1조4000억원 정도의 돈만 추가하면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떨어지는 만큼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는 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전체 진료비 중 건강보험에서 80~90%를 대주고 있는데 우리는 고작 67%에 그치고 있다"며 "새 정부 임기 동안 80%를 목표 삼아 정책을 추진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