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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사회 도약 프로젝트] ① 사회지도층 모럴 해저드
✍️ 사)선진복지사회연구 📅 2014.02.12 23:07 👁 118
 
"예금 29만1000원이 전 재산입니다."

1997년 내란과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다. 그러나 16년 만에 베일을 벗은 그의 재산이 거액의 추징금을 내고도 수백억원에 이른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전직 대통령뿐이 아니다. 표를 달라며 장밋빛 공약을 내세운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기가 바쁘게 말을 바꾸거나 없던 일로 하기 일쑤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가 공통으로 내걸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단골 공약(空約)이 된 지 오래다.

거액의 탈세를 저지르고 회사 돈을 횡령한 대기업 총수가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소환되는 장면 또한 국민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국가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측정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지난해 우리나라가 177개국 가운데 46위를 차지한 것은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신뢰 추락의 주범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성인 남녀 8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회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6.5%에 달했다. '타인(일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23.6%)과 비교하면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성균관대 김상욱 교수(사회학)는 "사회지도층이나 상류층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사회구성원들이 그들의 권위는 물론 권력과 계층 체제를 인정하지 않아 사회시스템이 불안해진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초 정·재계 유력 인사의 친인척들이 연루된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과 재벌총수 등 245명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세금을 탈루한 사건은 사회지도층이 지위와 권력을 이용,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부를 축적하는지를 적나라게 보여줬다.

동양그룹과 LIG그룹은 높은 금리를 내세워 각각 2100억원, 1조3000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수만명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겨줬다. 이는 개인 비리 수준을 넘어 회사를 믿은 국민들을 희생양 삼아 제 배를 불리고 신용이 생명인 자본시장의 질서까지 교란시킨 것이다.

이 때문인지 세계일보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지난달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5.8%에 불과했다.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언제나 입법부(국회)와 행정부가 가장 낮은 반면 대기업은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신뢰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노블레스는 있고 오블리주는 없다


국민들이 사회지도층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명예와 특권만 누리려 하고 이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는 회피하기 때문이다.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갈 장관 인사청문회 때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병역기피 등 4종 세트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의 필요조건이 됐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또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은 '우리나라는 정직하지 않아도 성공만 하면 사회지도층으로 용인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와 있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과 탈법 행위로 인해 결과지상주의가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불·탈법을 일삼는 사회지도층의 도덕불감증이 전염병처럼 일반 국민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찬열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주민등록법 위반자 중 위장전입자가 2008년 68명에서 2012년 158명으로 2.3배 늘었다.

고위공직자 등의 위장 전입을 손쉽게 접하면서 국민들도 위장전입 범죄에 대해 점차 무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분식회계 등을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탈세를 저지르고 회사 돈을 빼돌리는 대기업 총수들을 보며 유리지갑을 열어 꼬박꼬박 세금을 낸 서민들은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공무원이 공적 권한을 악용해 사익을 취하거나 대기업 총수들이 거액을 탈세하는 사건이 빈발하면 자신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거나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이행한 사람만 손해라고 생각해 납세를 거부하게 된다"면서 "일부 사회지도층이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들은 그들의 순기능마저 불신해 사회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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