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7)씨는 지난해 4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아 들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20만원이 넘는 금액이 쓰여 있었다. 퇴직하기 전 직장에서 내던 액수의 두 배가 넘었다. 회사에서 나온 뒤 1년 동안은 직장 건보료만큼만 내도록 유예받았는데, 그 기간이 끝나면서 이런 일을 겪었다. 그는 “소득이 없는데 어떻게 건보료가 두 배가 될 수 있느냐”고 건강보험공단에 따졌지만 소용 없었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김씨 같은 은퇴자에게 가혹한 제도다. 고정 수입이 없는데도 건보료가 퇴직 전보다 크게 오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구성해 대안을 만들다가 28일 전면 보류를 선언했다. 응당 은퇴자들의 원성은 커 가고 있다.
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은퇴 후 생계를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는 ‘반퇴(半退) 시대’를 거스르는 역주행이다. 반퇴는 실직에 가깝다. 반퇴자들은 “일자리에서 밀린 것도 억울한데 두 번 죽이는 거냐”며 정부를 성토 중이다.
김씨는 회사 다닐 때는 월급(300만원)의 약 3%인 9만원가량(같은 금액만큼 회사가 부담)을 건보료로 냈다. 퇴직 후에는 소득이 없는데도 가구원 수·연령·재산(3억원)·중형승용차를 따진 평가소득 보험료(6만6210원)와 재산건보료(12만1210원)·자동차건보료(1만6020원) 등 총 20만3440원을 내야 한다. 2013년 기준으로 61만 2000세대가 직장에 다닐 때 매월 평균 4만 7490원을 건보료로 냈지만 퇴직후에는 10만 6250원을 냈다. 직장 시절의 2.2배로 오른 것이다.
반퇴자들을 주로 괴롭히는 것은 재산건보료다. 김씨의 경우 아파트를 팔아서 은행에 예치하면 월 54만원의 이자(연리 2.16%) 소득이 발생하는데, 여기에 건보료(6.07%)를 부과하면 3만2770원이다. 현재의 아파트 소유 때문에 부과되는 12만1210원의 27% 밖에 안 된다. 이규식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아파트에서 소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지금처럼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산건보료는 재산이 적을수록 부담이 늘게 역진적으로 설계돼 있다. 최저 100만원에서 최고 30억원 초과까지 50등급으로 나눠 재산건보료를 매기는데, 등급당 부담을 따지면 1등급(평균 재산 275만원)이 재산의 1.7%를 건보료로 낸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줄어 50등급(30억원 초과)은 0.11%로 떨어진다. 저소득층 반퇴자에게 더 가혹한 제도다. 자동차건보료도 반퇴자에게는 골칫거리다. 1988년 지역건보를 도입할 때 소득 파악이 잘 안 되자 자가용이 있으면 소득이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뒤 그 틀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10년 이상 된 승용차나 다마스 같은 상용차도 3만원 넘는 건보료를 내야 한다.
정부가 건보료 개선안 발표를 연기한 이후 곳곳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노조는 29일 성명서에서 “기획단 개선안을 즉각 시행하지 않으면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 등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부자를 위한 게 아닌 대다수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이 되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퇴진도 요구했다. 경실련도 성명에서 “부과체계 개편을 중단 없이 추진하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고소득자의 부담을 줄이고 그들의 반발이 두려워 국정과제를 포기했다. 건보료와 연말정산 문제에 대해 정부의 공개 사과와 약속 이행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부과체계 개선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